웹진리스트

세상의 모든 쥘리를 위하여

안윤희 SDGs 시민기자 0 1547
차근차근 상영전 첫 상영작 ‘풀타임’

 춘천 몸짓 극장에서 ‘차근차근 상영전’의 막이 올랐다. 10월 21일부터 23일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주최로 열린 상영전은 지역과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3일에 걸쳐 총 네 편의 영화가 상영됐고, 각 영화 상영 후 소설가, 감독, 영화평론가가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었다. 영화 상영 외에도 벼룩시장, 춘천의 작가들과 버려지는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RERE 프로젝트 등의 부대행사가 함께 진행됐다.


 차근차근 상영전의 첫 상영 영화는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풀타임’이었다. 파리의 한 호텔에서 객실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는 쥘리는 교외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양육비를 보내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는 전남편은 지치는 생활을 더욱 고되게 한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 정착한 교외지만 교외의 좋은 점은 그뿐, 일자리가 없다. 생계를 위해서는 파리로 가야 하는데, 교통 파업으로 그녀의 출퇴근은 어려워지고 일상은 엉망이 된다. 기차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 이웃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역을 찾지만, 파업으로 기차 노선은 바뀌기 일쑤고 그마저도 없어져 겨우 카풀을 통해 출근한다. 지각을 한 것도 여러 번, 퇴근길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간신히 집에 도착했지만 시간은 너무 늦어버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아이들을 돌봐주던 이웃집 할머니도 더는 어렵다며, 다른 돌보미를 찾든 집 근처에서 일할 수 있게 동네 마트에서라도 일자리를 구하든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사실 쥘리는 경제학 석사 학위를 가진 인재로 마케팅 회사에서 일했었다. 다니던 회사의 폐업과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고 호텔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시 원래 직무로 이직을 준비 중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 어렵게 근무 시간을 조정하려 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출입증을 조작하여 근무 시간 중 무단이탈을 하고 나오지만 교통 파업 속에서 면접장을 찾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어렵게 본 면접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근무 시간에 무단으로 이탈한 것이 들켜 호텔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다. 쥘리의 생활은 나아질 수 있을까.


 영화는 88분 동안 쥘리의 일상을 보여준다. 폭탄이 터지고 암흑가의 범죄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일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으로 머리가 아파질 정도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남궁순금 소설가는 “포스터에 써진 그대로 일상 스릴러”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심박수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며 평을 시작했다. 그 어떤 공포 장르 영화보다 마음을 졸이게 하고, 실재할 것 같은 누군가의 현실적인 일상이기에 더 두렵게 느껴질 만큼 쥘리의 현실은 참담하다. 남궁 소설가는 쥘리의 하루를 투쟁 같은 하루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제도가 잘 갖춰있을 것 같은 선진국인 프랑스도 우리나라의 한 부모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제도가 미비하여 돌봄으로 내몰린, 제도에 포함되지 않는 여성의 삶을 생각하며, 결혼과 육아로 인해 피할 수 없는 경력 단절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국가적 문제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교통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남궁 소설가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파업을 보는 시각이 색달랐다”며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고, 정치적 시선 없이 파업을 마치 천재지변과 같이 그 자체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신선했다. 실제 프랑스 국민들은 파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이 7, 80%를 이뤄 감독이 혹시 영화에서 파업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3554143627_RaGvmtTZ_d59262cb29488d4c5c20c5991cacdf7f9b085fc0.jpg
▲ ‘풀타임’ 상영 후 남궁순금 소설가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번 상영전에 참가한 심병화씨는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화면과 급박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감독의 표현력이 돋보였다. 두 아이의 엄마인 주인공이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퇴근하는 순간, 집에서의 정신없는 순간에 연락 안 되는 전남편까지, 답답하고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다. 엄마로서 아이 돌봄과 직장에서의 여러 일들에서 경력 단절 싱글맘의 아픔을 잘 다뤘다. 휴일마저도 전쟁터처럼 지내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부분이 공감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화를 통해, 쥘리를 통해 여성들에게만 전가되는 양육의 불평등 문제, 양질의 일자리와 아이 돌봄 제도의 필요성,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영화 제목이 말하는 ‘풀타임’은 단순히 직장에서의 근무 시간만이 아닌,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 내내 이어지는 근무와 양육의 풀타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근무와 양육의 풀타임을 뛰고 있을 또 다른 쥘리를 응원한다.



0 Comments